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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키 스튜어트 경의 레이싱, 시계, 굿우드, 그리고 스털링 모스에 대한 썰!!

by 코스모스S2 2025.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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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키 스튜어트 레이싱 전

 

➡️ 전설의 시작, 구드우드에서 피어난 레이싱 꿈

 

세 차례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 우승, 총 27번의 레이스에서 승리, 47회의 포디움 등극 그리고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3위 입상의 기록을 자랑하는 제이크 스튜어트 경은 모터스포츠의 진정한 거장으로 꼽힙니다.

 

그는 안전 개선을 위한 혁신적인 활동을 주도하고, 롤렉스와 하이네켄의 브랜드 대사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왔으며, 최근에는 치매 극복을 위해 자선 단체 '레이스 어게인스트 데멘시아'를 설립하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업적을 통해 그는 소개가 필요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스포츠, 개인적, 그리고 비즈니스적 성공이 빛나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제이크 경의 정상 등극 과정은 그 자체로 특유의 독창성과 겸손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이 모터 레이싱과 동일시되는 것을 고려하면 약간 의외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젊은 시절 그의 첫 번째 선택 스포츠는 모터스포츠가 아닌 클레이 피전 사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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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키 경의 포뮬러1 자동차

 

➡️ 트랙 위의 영웅, 사회적 책임까지 품다

 

그는 유럽 쿠프 데 나시옹 챔피언십에서 두 번 우승하며 두각을 드러냈고, 이후 196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영국을 대표해 출전하면서 인상적인 성취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레이싱 경력의 씨앗은 1953년 구드우드 모터 서킷에서 첫 운명적 경험을 통해 뿌려졌습니다. 당시 어린 제이크는 형 제이미가 9시간 레이스에 출전하는 것을 돕기 위해 서킷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겨우 14살의 소년이었죠. 제 형은 C형 재규어를 타고 경주를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그의 트로피는 지금도 우리 벽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형의 승리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소년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지만, 이후 레이스 참가자들과 만남의 순간은 더욱 강렬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그는 "모스, 방기오, 파리나, 빌로레시, 타루피 등 모든 주역들의 사인을 받았다"고 회상하며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이렇듯 구드우드는 그의 모터스포츠 여정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 안전을 향한 집념, 비극에서 태어난 사명감

 

8년 후 그는 다시 구드우드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번에는 드라이버로서 차량 운전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이크는 쿠퍼 T49을 운전하며 승리를 거머쥐었고, 이는 그의 두 번째 국경 남쪽 승리이자 '플라이잉 스코티시맨'이라는 별칭을 부여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드우드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강렬하지만, 반드시 모든 기억이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1962년 스털링 모스의 사고는 당시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고를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소식을 TV를 통해 접한 그는 큰 슬픔에 빠졌다고 회고합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한동안 잊혀질 뻔했던 전설적인 '굿우드의 주인' 모스를 위한 작별 인사는 리바이벌 이벤트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팬들과 가족, 드라이버들 모두에게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제이크는 그의 위대한 영웅 모스 경과의 마지막 시간을 특별하게 여기며 가족 측과 함께 감동적인 트랙 퍼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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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키 스튜어트 경 단독 사진

 

제이크 스튜어트 경의 말과 행동에는 특유의 겸손함과 애정이 드러나며 이는 그의 인격과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화려한 드라이버 경력 외에도 스포츠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그의 다른 업적들은 그 중요성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안전 운동 시작에는 비극이 동반되었습니다. 1968년 독일 호켄하임에서 열린 포뮬러 2 경주 도중 친구 짐 클락이 사망했으며, 이 사건은 제이크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습니다. 클락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친구였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드라이버였습니다.